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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은 성공했는데, 약은 나오지 않았다 — 약물 재창출의 세 가지 간극

희귀질환 약물 재창출 임상 47건을 분석한 DREAMS 연구가 드러낸 세 가지 간극 — 임상적 근거와 규제 승인 사이, 학계와 산업 사이, 보이는 근거와 보이지 않는 근거 사이.

약물 재창출에서 임상시험과 허가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일러스트

약물 재창출의 세 가지 간극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서 가장 현실적인 전략으로 꼽힌다. 이미 안전성이 확인된 약을 새로운 적응증에 쓰는 만큼, 개발 기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상에서 유효성을 입증하고도 정식 허가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 그럴까.

EU 지원 DREAMS 컨소시엄이 최근 'Drug Discovery Today'에 발표한 연구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희귀질환 약물 재창출 임상시험 47건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완료된 임상시험 중 66%가 유효성 평가변수를 충족했다.
  • 그러나 주요 규제기관의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은 39%에 불과했다.

유효성을 입증한 10건 중 4건은 허가 문턱을 넘지 못한 셈이다. 연구진은 이를 "translational gap"이라 부른다. 임상적 근거와 규제 승인 사이의 간극이다.

두 번째 간극: 누가 임상을 이끄는가

같은 연구는 또 다른 간극을 지적한다. 47건 중 64%는 학계가 주도한 임상시험이었다. 그런데 허가를 받을 가능성은 기업이 후원한 임상이 훨씬 높았다. 연구진은 이를 "sponsor gap"이라 부른다.

학계 주도의 임상이 유효성을 보여도, 허가 신청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허가 신청에는 규제 대응, 추가 자료 제출, 시판 후 관리 계획 등 임상시험 그 자체를 넘어선 작업이 필요하다. 학계 연구팀이 이 전 과정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유효한 결과가 논문으로만 남고 약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적 이유다.

세 번째 간극: 보이지 않는 근거

세 번째는 "visibility gap"이다. 연구진이 분석 대상 시험을 찾는 과정에서, 관련 연구의 3분의 2는 표준 데이터베이스가 아닌 웹 검색이나 그레이 리터처(grey literature)에서만 발견됐다. 체계적으로 정리된 근거가 아니라, 흩어진 자료 속에 묻혀 있었다는 뜻이다.

근거가 흩어져 있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연구자들이 선행 연구를 놓치고 중복된 시도를 반복한다. 둘째, 규제기관이나 기업이 해당 적응증의 근거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보이지 않는 근거는 없는 근거와 비슷한 취급을 받는다.

간극을 메우는 일

DREAMS 프로젝트(Drug Repurposing with Artificial intelligence for Muscular disorderS)는 2023년 출범한 EU 지원 사업으로, AI와 유도만능줄기세포를 결합해 치료제가 없는 희귀 신경근육질환의 치료법을 찾는다. 대상 질환은 다이나민 2 중심핵 근육병증, 뒤센 근이영양증, 에머리-드레이푸스 근이영양증 2형, 폼페병, 다논병 등 5개다.

이 프로젝트가 겨냥하는 것은 후보물질 발굴 그 자체만이 아니다. 위의 세 간극이 보여주듯, 약물 재창출의 병목은 이제 '후보를 찾는 일'보다 '근거를 허가로 연결하는 일'에 더 가까워지고 있다. 흩어진 근거를 모으고, 학계의 결과를 산업의 언어로 번역하고, 규제기관이 요구하는 형태로 정리하는 작업. 이 연결 작업이 없으면 유효성을 입증한 66% 중 상당수는 계속해서 허가 문턱 앞에서 멈출 것이다.

임상시험의 성공과 환자에게 닿는 약 사이에는, 아직 메워지지 않은 간극이 있다.

참고: DREAMS 컨소시엄 연구, Drug Discovery Today (2026). CORDIS 보도자료(2026.10.13) 및 원문을 바탕으로 작성.